[이런 인물 들어봤니] 로버트 하디 선교사(Robert A. Har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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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마음이 답답한 이들에겐 문이 되어 주시고 / 목마른 이들에겐 구원의 샘이 되시는 주님
절망하는 이들에겐 희망으로 / 슬퍼하는 이들에겐 기쁨으로 오십시오
앓는 이들에겐 치유자로 / 갇힌 이들에겐 해방자로 오십시오
이제 우리의 기다림은 / 잘 익은 포도주의 향기를 내고 / 목관악기의 소리를 냅니다
어서 오십시오, 주님 / 우리는 아직 온전히 마음을 비우지는 못했으나
겸허한 갈망의 기다림 끝에 꼭 당신을 뵙게 해 주십시오
우리의 첫 기다림이며 / 마지막 기다림이신 주님 /어서 오십시오 (하략)
- 이해인 시, '다시 대림절에' 중에서
예수의 오심을 고대하는 이 대림절에, 우리 민족의 간절한 기다림은 무엇일까? 이 답을 구하기 위해 올겨울 가장 춥다는 12월 8일, 강원도 고성군 간성으로 갔습니다. 군대 생활로 익숙한 강원도라 고속버스 차창으로 보이는 풍광은 낯익었습니다. 하늘은 짙푸르고 소나무가 듬성듬성 보이는 겹겹의 산에는 잎을 떨군 나무들이 따사로운 볕을 쬐며 서 있었습니다. 화양강휴게소에서 강을 내려다보니 가운데에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면서 본 개울들은 다 얼었는데, 강물이 다 얼지 않은 것을 보며, 남북의 마음이 조금 넓어지면 평화의 꿈이 도도히 흐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스는 인제, 원통을 지나 진부령을 넘었습니다.
그날은 마침 남북철도공동조사단이 동해선 철도 북측 구간을 조사하는 날로, 금강산역~두만강역 구간 약 800km를 살펴본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지난 9월 남북 정상 공동선언에서, 동서 철도를 연결하고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 등 경제협력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남북 철도 공동 조사는 미국의 북한 제재 문제로 예정보다 한 달 정도 늦었고 11월 30일에야 남북철도공동조사단을 태운 열차가 군사분계선을 넘었습니다. 남북 연결 열차 운행이 멈춘 지 꼭 10년 만입니다. 동해선 구간은 처음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1937년 연결한 안변~양양 동해 북부선은 지역 주민과 금강산 등을 찾는 관광객의 이용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루 4차례 운행했던 열차는 원산으로 유학하는 학생들 통학 수단으로도 활용됐으며, 경성(서울)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고 합니다. 6·25 전쟁 중 대규모 폭격으로 양양역사와 철로가 완전히 파괴돼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동해선 복구는 김대중 정부 시절에 남북 경제협력으로 진행됐습니다. 고성~군사분계선 구간을 2005년 말 완공했고 2007년 시험 운행을 했으나, 이후 남북 긴장 고조로 동해선 연결과 영업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동해선이 온전히 연결되면 간성 같은 도시가 살아나고, 남북 평화의 기초가 튼실해질 것입니다.
동해선 구간이었고 남한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고성군에 소재하고 금강산 관광 길목에 있는 간성읍의 분위기에서 남북 변화의 움직임을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퇴락한 시장도 안쓰러웠습니다. 남북 화해에 관한 현수막이라도 기대했지만 볼 수 없었습니다. 지나가는 분에게 남북 관계 개선이 어떤 변화를 주고 있느냐 물으니, 아직 모르겠다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간성버스터미널 출입구에 '평화 지역 시화 전시회'와 '평화 이음 토요 콘서트' 포스터가 붙어 있었습니다. 간성교회는 간성읍이 잘 보이는 양지 바른 언덕 위에 운치 있는 적송과 어우러져 아름답게 서 있었습니다. 영동 지역 첫 교회로, 1901년 로버트 하디(Robert A. Hardie) 선교사에 의해 현 간성초등학교 자리에서 시작됐습니다.
하디 선교사는 캐나다 토론토대학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파송을 받아 1890년 입국합니다. 처음에는 조선 정부가 세운 서양식 병원 제중원에서 2년 동안 근무하다가 원산에서 시약소를 운영하며 영덕에서 원주에 이르는 여러 곳에서 환자들을 치료했습니다. 그는 미국남감리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원산 이남 지역에 파송을 받아 의료 사역과 함께 강원도 순회 전도 사역에 힘썼습니다. 그런데 원산 기도회 강연을 준비하다가 성령 체험을 하게 됐습니다. 그는 자기 죄를 통회했고 이것이 연합 기도회에 참석한 이들에게로 이어지면서 '1903년 원산 대부흥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이는 한국교회 부흥을 촉발한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부흥 운동 주요 인물이 된 하디 선교사는 원산을 중심으로 강원도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복음을 전했고 '하디 벨트'가 형성돼 1901년 강릉중앙교회·고성교회·간성교회·양양교회가 세워졌습니다. 1939년 일제는 간성교회를 강제 폐쇄했고, 해방 후 간성이 북한에 속해 핍박을 받자 교인들은 교회 문을 닫고 개인 집에서 예배했습니다. 1953년 10월 수복돼 교회 문을 열었을 때, 당시 제15사단장이 돌집교회를 지어 헌당해 간성교회 교인들에게 넘겨줬습니다. 1954년 2월 초대 노영태 목사가 1960년까지 교회를 이끌며 교회가 발전하게 됩니다.
"교회 창립 1901. 7. 17. / 불꽃의 사람 로버트 하디 세움 / 선교사의 눈물과 열정으로 세워진 영동 첫 교회"
2016년 새로 지은 교회 앞에 서 있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글귀가 새겨진 돌비 뒤에 적힌 글입니다. 117년간 고난에 찬 분단 역사를 지켜본 간성교회는, 남북이 더불어 살고 문이 열리면 '하디 벨트'를 따라 원산으로 올라가 선교할 꿈을 꾸고 있습니다.
[출처: 뉴스앤조이] 평화통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간성교회
[그림] 간성교회 예배당 / 이근복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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